스핑크스가 현대인에게 보내는 경고 미디어


전설에 의하면, 스핑크스는 테베로 가는 돌산에 머물면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오후에는 두 다리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였는데 오이디푸스가 사람이라고 맞추자 스핑크스는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전설은 누구나 유아기에는 기어다니고, 커가면서 걷게 되고, 노인이 되면 지팡이를 짚는다는 인간의 운명을 말한다. 그런데 왜 그런 전설이 생겨났을까? 그냥 재미로 전승된 유머는 아닐 것이다. 혹시 그것이 인간은 지리구속적인 존재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찬 두 다리가 자유를 주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인간은 결국 '장소'에서 삶을 시작하고 다시 '장소'에서 삶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그런데 그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나그네'는 결국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한다는 교훈이 그 전설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산업화, 도시화와 더불어 삶의 뿌리가 뽑히고 정보화와 함께 '장소(place)'의 소중함을 망각하게 된 21세기 현대인들이야말로  스핑크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바로 그 나그네들이 아닐까?

우리 나라에서 농업사회의 목가적 커뮤니티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전근대적인 전통 마을은 물론이고, 한 장소에서 가족과 이웃이 모여 살며, 근처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근처에서 직업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하던 그런 지역사회도 오래 전에 사라졌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삶의 기회를 대도시에 집중시켰다. 누구도 공장과 사무실, 학교, 백화점과 극장, 식당과 술집, 그리고 홍등가의 화려한 불빛이 던지는 유혹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장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 이웃은 물론이고, 내가 서 있는 곳,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배경'으로 전락했다. 나는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연결된 세계에 속할 뿐이다. 그것이 때로 가상세계이기도 하고, 때로 다른 곳에 있는 친구, 동료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장소'에 '나'는 부재한다. 우리 사회에는 항상 '친구들'과 연결되고, 언제까지나 '친구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환상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스핑크스의 경고가 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현대인도 고대인에 못지 않게 장소에 매여 살아야 한다. 고속열차, 지하철, 자동차, 비행기가 결코 그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90세 수명을 지난 현대인은 최소한 20~30년간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장소'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댓가를 혹독하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노인성 정신질환을 피해가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쓸쓸한 노후를 보내야 할 것이다. 

60대가 되면 직업적 관계가 사라진다. 70대가 되면 '친구들'이 줄어들고 가족이 멀어지며, 80대가 되면 모든 사회적 관계가 소실된다. 인간은 결국 '장소'로 귀환한다. 젊은 시절 그곳을 철저히 버렸을수록 돌아가기 힘드리라.

만약 당신이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치는 사람, 지하철 안에서 당신 옆에 기대 선 사람을 무시하고 스마트폰만을 쳐다보고 있다면, 당신은 스핑크스에 붙잡힌 나그네임에 분명하다.